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奈良筆(나라 붓)

  우리나라의 毛筆의 연혁은 한나라에서 전래된 오래된 것임에는 틀림없으나, 長穗의 당나라식 붓은 당나라에 파견되었던 스님이 그곳에서 제법을 배워 귀국 후 大和國 今井(이마이)의 酒井名淸川에게 만들게하여 嵯峨天皇(사가천황)과 황태자에게 헌납했다고 전해집니다. 그 후 淸川의 손자가 今井에서 毛筆제조에 종사했지만, 墨산지에서 사원 등의 수요가 많은 奈良로 중심지가 점차 이동하여 발달하게 되었습니다. 空海가 가르쳤다고 전해지는 붓은, 芯毛의 허리를 麻紙같은 종이로 확실하게 감아 고정시켜, 심에는 엷게 衣毛를 씌워 붓끝을 만드는 巻筆(마키후데)입니다. 오늘과 같은 無芯筆이 만들어지게 된 것은 江戶(에도)시대 중기 때의 일입니다. 細井廣沢이 强弱의 毛를 조합해서 풀로 굳히는 水筆을 만든 후에는 이 방법에 의한 毛筆이 늘어나서 각국, 각소에서 모필이 제조되게 됩니다. 그 후 水筆 외에도 捌筆이 제조되어 서도가 융성해지고 서풍, 서법에 걸맞는 大小, 長短, 柔剛 등 수백 종에 달하는 다양한 현재의 毛筆이 되었습니다. 昭和(쇼와) 52년 10월 奈良筆은 [전통공예산업 진흥법]에 의해 通産大臣의 인정을 얻어, 전통공예품으로서 지정을 받았습니다. 최근의 주산지는 나라, 히로시마, 아이치, 센다이, 니이가타 등이며, 고급품을 중심으로 일본의 毛筆 제조업 발상지로서의 관록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奈良墨 (나라 묵)

  墨은 奈良의 대표적인 전통산업입니다. 그 내력과 역사, 현재의 제조규모만 보아도 이에 견줄만한 것이 없을 정도의 奈良 고유의 산업입니다. 묵의 종류로는 소나무기름으로 만드는 松煙墨과 菜種이나 참깨, 오동나무 기름으로 만드는 油煙墨이 있습니다. 南都의 油煙墨으로 불리웠던 奈良墨은 806년 당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던 空海가 붓과 함께 제조법을 가지고 돌아와 興福寺에서 제조한 것이 시초입니다. 한편 송연묵은 더 늦은 平安(헤이안)시대 후기에 紀州, 近江에서 제조되었지만, 鎌倉(카마쿠라)시대에 사라집니다. 奈良墨은 二諦坊에서 제조되었으나 桃山(모모야마)시대에 松井道珍(古梅園의 시조)가 남도묵의 평가를 높이며 민간사업으로 기초를 다졌습니다. 그 후 奈良에 製墨所가 잇달아 생기고 전국각지의 유수한 기술과 공인들이 모여들어 그 결과 각 산지는 쇠퇴하고, 지금은 일본 묵 생산의 9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奈良 団 扇 ( 나라 부채 )

  奈良団扇 (나라 우치와) 는 아름답게 물들인 일본 전통종이인 和紙에 섬세하게 덧붙인 투조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사슴이나 등꽃 등 주로 奈良의 대표적 풍경이 다루어지며, 그 운치를 예로부터 사람들은 소중히 여겨왔습니다. 春日社의 神官들이 內職으로써 만든 団扇(團扇)이 奈良団扇의 시작이라 전해집니다만, 당시의 団扇은 현재와 같이 풍류가 느껴지는 멋진 모습이 아니라 실용적인 渋団扇이었습니다. 투조를 이용하게 된 것은 무로마치시대 興福寺의 스님이 처음 만들었다는 설과, 団扇 제작을 업으로 하는 岩井善助(이와시 요시스케)라는 인물이 시작했다는 설 등이 있습니다.

 

 

赤膚燒 ( 아카하다 도자기 )

  현재의 아카하다쵸(赤膚町)를 중심으로 서쪽의 쿄큐료(京丘陵) 일대는 오랜 요업지로써 토기, 화로 등의 제작이 활발하여 귀족이나 많은 절들의 수요를 충족시켰습니다. 이후 다도의 영향으로 흙풍로가 만들어지게 되어, 桃山(모모야마)시대에는 大和郡山(야마토 코오리야마) 성주인 大和 大納言 秀長이 尾張常滑(오와리코토나메)에서 도공 九郞(요쿠로)을 초대하여 풍로를 시작으로 찻잔를 만들게 했습니다. 江戶(에도)시대 전기(1615~1624)에 遠州流의 開祖 小堀遠州가 본인 취향의 도기를 제작시켜 茶道具로서 세상에 알렸다고도 하며, 또 1644~1668년에 京都에서 온 野野村仁清(노노무라 닌세)가 교토풍 다기(茶器)의 제법을 지도했다고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江戶(에도) 중기에는 大和郡山 城主 柳沢堯山(야나기 사와교잔)公이 교토 清水(키요미즈)에서 陶工 伊之助(이노스케)와 治兵衛(치페이) 2명을 초청하여, 요업을 부흥시켜 群山藩御用窯로써 보호, 장려하게 되었습니다. 樂燒와 공기를 燒山公에게 헌납하여 木兎의 戶를 얻은 郡山藩의 御殿医 青木木兎(아오키 모구토)와, 大和 群山 시내에서 방물가게를 경영하며 樂燒를 비롯한 수많은 명작을 남긴 奧田木白(오쿠다 모쿠하쿠)들이 赤膚燒의 평가를 전국적으로 드높였습니다. 현재는 이 전통을 바탕으로 새로운 경지를 추구하는 작가도 있으며, 奈良 고유의 도기로써 사랑받고 있습니다.

 

角細工 ( 사슴뿔 세공 )

  奈良의 [角細工(쯔노자이쿠)]의 유래를 문헌에서 찾아볼 수는 없지만, 비교적 새로운 기록으로는 메이지 28년에 간행된 [나라명소 안내]가 있습니다. 이에 의하면 [角細工]의 대표적인 것들로는 [담뱃대], [염주], [칼걸이], [빗], [簪(여자의 일본식 속발에 꽂는 장식품)] 등이며, 江戶(에도)시대부터 奈良(나라)시대까지 선물로 선호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昭和(쇼와) 20년경까지는 奈良의 角細工을 취급하는 가게를 [쯔노야]라하며 대량으로 제작, 판매되었다. [칼걸이], [젓가락], [빗], [장식품] 등이 대부분이며, 江戶(에도)시대 이후, 기호품의 비율이 늘어났습니다. 최근 [角細工]을 직업으로 하는 이가 해마다 줄어들어 전국에서 奈良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소재인 사슴뿔을 奈良에서 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昭和(쇼와) 20년 이후는 [브로우치], [펜던트], [루프타이], [카우스], [帯止(오비토메, 여성의 옷에 장식하는 엑세서리)] 등 현대풍으로 변화한 한편, [장식품], [箆(헤라, 뼈인두)], [젓가락] 등도 제작되어 전통공예 혹은 특산품으로서 이름을 떨치고 있습니다.

 

奈 良 晒 (나라 천)

 奈良晒(나라 사라시)는 古事記에 기원이 적혀있지만, 江戶(에도)시대 초기에 일급 마직물로써 천하에 알려지게 됩니다. 清須美清四郞(키요스미 요시로우)는 桃山(모모야마)시대에 개량에 성공하여 순식간에 유행되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때까지 晒(사라시)는 주로 승려나 신관의 의상으로 이용되었으나 무사의 예복과 여름 홑옷으로 판로를 넓히게 됩니다. 물론 막부에도 헌납되어, 徳川家康(토쿠가와 이에야스)는 이를 애용함과 동시에 奈良晒(나라 사라시)의 제조와 판매를 장악, 통제하는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奈良晒(나라 사라시)는 그 정도로 소중한 발전산업이었던 것입니다. 약 1개월에 걸쳐 제작된 大麻糸로 직조한 마직물을 희고 시원한 모습으로 완성시키는 것은 계곡의 맑은 물로써, 越後上布는 눈(雪)에서, 奈良晒(나라 사라시)는 바위 사이를 흐르는 물에서 탄생한다고 전해집니다. 그 청초하고 기품있는 모습으로 인해 예로부터 狂言, 舞樂의상 등 특수한 용도로 사용되었으며, 현재는 茶巾, 正倉院 寶物을 디자인한 테이블 러너, 暖簾 등으로도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古樂面 ( 가면 )

   일본의 古樂面(코가쿠멘)은 7세기 초 推古天皇(스이코천황) 때 불교와 함께 불교미술의 하나로써 대륙으로부터 전해진 것으로, 그 대부분은 奈良의 社寺에 寶藏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伎樂과 함께 [伎樂面]이, 다음엔 舞樂(雅樂)의 [舞樂面], 이어서 불상과 기타 신앙대상을 절 밖으로 들고 나가 행진하며 일반대중에게 널리 공덕과 법설을 전하는 행사인 道行에 사용하는 [行道面]이 전래되었습니다. 11세기에는 能樂, 狂言과 함께 일본 독자적인 面이 탄생합니다. 이들 중 주로 무악, 기악의 古面을 중심으로 모조하여 관람용으로써 만들어지게 된 것은 근래에 들어서의 일이나, 제 2차 세계대전 후 일본인이 고유의 고미술을 더욱 중시하게 된 이후로는 단순한 奈良의 기념품이 아닌 실내장식용 공예품으로써 백화점 등에서도 취급하게 되었습니다. 奈良에는 能, 狂言에도 사용할 수 있는 木彫面 작가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奈良人形 ( 나라 인형 )

  奈良人形(나라 닌교)은 平安(헤이안)시대 말기에 시작된 春日若宮 온마츠리(祭)의 田樂法師의 삿갓이나 島台를 장식했던 화려한 색상의 인형이 그 시초라 합니다. 그 후에도 奈良의 인형은 春日社 등의 제례나 예식을 장식하는 형태로 발전하여 安土, 桃山시대에는 더욱 비약하게 됩니다. 이 시대에 信長(노부나가), 秀吉(히데요시), 家康(이에야스) 에게 각지에서 헌상품이 들어왔습니다. 奈良에서의 그 필두는 아름다운 색상의 盃台였으며, 그 盃台를 장식했던 것이 奈良인형의 能人形이었다고 [多聞院 日記] 등에 기록되어있습니다. 마침 이 시기는 중국의 散樂에서 시작된 猿樂能이 能樂으로 확립되어, 能人形이 주를 이루는 나라인형 고유의 형태가 정해진 시기이기도 합니다.

奈良漆器 (나라 칠기)

  일본을 대표하는 칠기공예는 불교전래를 계기로 天平文化와 함께 꽃피어 옻으로 그림을 그린 것, 나전, 金銀平脱, 平文 등 다양한 기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한 눈이 번쩍 뜨일만한 아름다운 도기들을 후세에 남겨주었습니다. 필시 직접 도기를 수입함과 동시에 중국공인들을 초청하여 제작하게 하고 기술을 전수받았을 거라 생각됩니다. 그 무렵 수많은 작품들이 正倉院에 보관되고 있었기에 奈良은 일본 칠기의 발상지라 불리우고 있습니다. 중세에는 塗師, 漆屋座가 등장합니다. 이들은 남도에 살면서 社寺에 소속되어, 건축물의 塗師로 활동함과 동시에 칠기로 된 도기도 제작했습니다. 또한 다도의 발전과 더불어 관련 도구들을 제작하는 塗師들 중에서도 명인들이 출현하여, 江戶(에도)시대에는 武具 塗師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明治(메이지)시대에는 奈良 박람회 회사가 설립되었습니다. 正倉院의 보물과 寺社의 집기가 처음으로 공개된 메이지 8년 제 1회 박람회에 의해 奈良의 칠기공들은 크게 啓發되어, 모사가 흥하여지고 奈良漆器의 부흥이 이루어졌습니다. 그 중에서도 螺鈿漆 기법은 奈良의 독무대입니다.